자녀를 책망하지 않으면

(왕상 1:6)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또한 매우 잘생긴 자로서 그의 어머니가 압살롬 다음에 그를 낳았더라.

다윗이 늙었을 때 그의 아들들 중에서 아도니야가 자기를 스스로 높여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왕상 1:5)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자신을 높이며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해 병거들과 기병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사람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하여 그녀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아비가일의 아들 길르압인데 그는 왕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켰다가 요압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제 넷째인 아도니야는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가 되었습니다.

(삼하 3:2-4)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아들들이 태어났는데 그의 맏아들은 예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난 암논이라. 그의 둘째는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서 난 길르압이요,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 압살롬이요, 넷째는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요, 다섯째는 아비달의 아들 스바댜요,

그러나 아도니야는 아버지 앞에서 자기에게 이스라엘 왕국을 맡겨 달라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다윗에게는 알리지 않고 자기를 지지하는 몇몇 신하들과 모의하여 스스로 왕위 계승식을 가졌습니다. 

(왕상 1:11) 그러므로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은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통치한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그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도니야는 아마도 먼저 왕위 계승식을 하고 그 사실을 백성에게 발표하여 기정 사실로 만들어 놓으면 늙은 아버지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무모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에 나와 있듯이 다윗은 아도니야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묵인하고 용납해 왔습니다. 그는 한 번도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그를 서운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다윗의 이런 자유방임형 양육 방식이 아도니야를 망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버릇없이 자란 아도니야는 나중에 왕위 계승과 같은 중요한 문제도 아버지와 의논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만약 자녀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는 아이들을 책망하고 징계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이 자식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자녀가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아도니야처럼 막가는 아들이 나오게 됩니다.

(잠 13:24)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

여러분이 자기 자녀들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고 아직도 소망을 갖고 있다면 자녀들을 훈계하고 책망하고 징계해야 합니다. 자녀가 서럽게 운다고 해서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매를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잠 19:18) 소망이 있을 동안에 네 아들을 징계하되 그가 운다고 네 혼이 아끼지 말지니라.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회초리를 들어 징계를 한다고 해서 아이가 죽지는 않습니다. 진짜 아이를 죽이는 길은 자녀가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잠 23:13) 바로잡는 것을 아이에게 금하지 말라. 네가 그를 회초리로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